득성의 유래
사천목씨종친회 득성의 유래입니다.
목씨(睦氏)의 유래는 문헌상의 자료가 없어 알 길이 없으나 예전부터 ‘형제상목설(兄弟相睦說)’과 ‘당학사동래설(唐學士東來說)’이 전해져 왔다.
옛날 경남 사천(泗川) 지방에 형제가 살았는데 그들의 우애가 어찌나 깊었던지 그 소문이 널리 퍼져 마침내는 나라에서까지 이 소문을 듣고 그 지극한 형제애를 표창하기 위해서 ‘화목’을 뜻하는 ‘睦’자를 성(姓)으로 내렸다는 것이 ‘형제상목설’의 줄거리이다. 다시 말해 우리 목씨 성은 사회적 덕행자 표창 차원에서 국가[고려]에서 내려 준 사성(賜姓)이라는 것이다.
‘당학사동래설’은 고구려 28대 영류왕618~642)의 요청을 받은 당(唐)나라 태종(太宗)이 고구려의 풍속을 교화할 현량재사 8인을 파견했는데 그 때 파견된 학사 목충(睦种)이 목씨 성의 시조라는 것이다. 그러나 목충은 당나라와 고구려가 전쟁을 하자 신라로 귀화하지만 그 이후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전해지는 이야기의 전부이다.
오래 전부터 ‘형제상목설’이 세간에 많이 전해져 왔고, 또 문중에서도 대대로 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 사실로 미루어 짐작컨대 목씨는 커다란 영예와 함께 세상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. 옛날부터 나라에 큰 공이 있는 신하들이나 사회에서 큰 덕을 행한 사람에게 임금께서 성(姓)을 내렸기 때문이다. 목씨 성이 1260년대 고려사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 중기 이후 목씨 성을 얻은 것으로 추측된다.